친족에게 오랫동안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직장에 다니고 취미생활도 했다면, 성적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일상생활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준강간죄의 성립이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밖에서 일을 할 수 있었는지와 가해자의 성적 요구에 맞설 수 있었는지는 구별하여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2025. 5. 1. 선고 2021도11938 판결은 장기간의 폭력과 통제로 형성된 심리적 항거불능이 문제 된 사건입니다. 피해자가 왜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일부 요구를 거절한 사실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준강간은 의식이 없는 경우에만 성립할까요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에 성립합니다(형법 제299조). 잠이 들거나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경우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항거불능에는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에는 성폭력처벌법의 가중처벌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3항, 제1항). 다만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항거불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의 관계와 폭력·통제가 지속된 과정, 문제 된 성행위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2. 피해자의 사회생활을 근거로 무죄를 판단한 사건
이 사건 피해자는 부모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삼촌인 피고인의 가게에서 숙식하며 일하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폭행하며 처음 성폭행을 한 뒤, 약 19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폭언과 폭행, 외출과 생활에 대한 통제를 계속하였습니다.
재판에서 문제 된 예비적 공소사실은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다섯 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환송 전 항소심은 피해자가 직업과 취미생활을 유지하고, 일부 요구를 거절하기도 했다는 사정 등에 주목하여 준강간 부분도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두 사람의 관계를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밖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과, 자신을 오랫동안 폭행하고 통제한 사람의 성적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3. 일상생활과 성적 요구에 대한 저항 능력은 다릅니다
대법원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오랜 기간 폭력과 성적 학대, 감시와 통제를 계속한 경우 그 영향이 누적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로 인한 심리적·정서적 억압 때문에 성적 침해에 맞설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면 심리적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취미나 사회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항거곤란을 부정할 결정적 사정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일부 요구를 거절한 사실 역시 피고인이 그 요구를 강하게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일부 성적 요구를 거절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된 성행위도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경제적 활동을 하거나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억압 상태가 해소되었는지, 관계가 달라졌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성장 과정과 의존관계, 반복된 폭력, 정신건강 상태 등이 함께 고려되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힘든 관계에 있었다거나 정신과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준강간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정들이 각 성행위 당시의 저항 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피고인이 그 상태를 이용하였는지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 판결도 특정한 행동 하나가 아니라 전체 경위 속에서 신중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4. 파기환송 뒤에는 징역 9년이 확정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주위적 공소사실인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부분의 무죄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예비적 공소사실인 준강간 부분은 심리적 항거불능에 관한 법리를 잘못 적용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두 공소사실이 동일체 관계에 있었으므로 원심판결 전체를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판결 자체가 준강간 유죄나 징역 9년을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환송 후에는 검사가 주위적 강간 공소사실을 삭제하였고, 법원은 남은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 부분을 유죄로 판단하여 2025년 8월 22일 징역 9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이후 피고인의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되었습니다(대법원 2025. 12. 11. 선고 2025도14694 판결).
5. 피해 경위는 관계의 변화와 함께 설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건에서는 마지막 성행위 당시의 말과 행동만 설명해서는 오랜 억압의 영향을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함께 살게 된 이유, 폭력이 시작된 시점, 거절했을 때 생긴 일, 생활비나 주거를 의존하게 된 과정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날짜는 억지로 특정하지 말고 확인 가능한 자료와 구분해야 합니다.
본인이 보유한 통제·위협 메시지, 당시 피해를 알렸던 대화, 본인의 진료·상담 기록은 그 경위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자료가 있다는 사실만 나열하기보다 어느 시기의 어떤 상태를 보여 주는지 연결하여 설명해야 합니다. 진료기록도 진단명 하나가 아니라 증상이 나타난 경위와 당시 생활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에 다녔거나 상대방에게 다정한 말을 한 기록처럼 불리하게 보일 수 있는 사정도 숨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거절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은 자료와 진술을 대조하여 각 범행 당시 피해자가 어떤 상태였고 상대방이 이를 알고 이용했는지를 입증할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Q. 직장을 다니고 여행도 했다면 준강간 피해로 인정받기 어렵나요?
A. 그 사실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 판결은 이 사건에서 사회활동을 했다는 사정이 심리적 항거곤란을 부정할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실제 관계와 각 행위 당시의 상태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필요합니다.
Q. 성적 요구를 한 번 거절한 적이 있으면 항거불능이 아닌가요?
A.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요구를 어떤 상황에서 거절했는지, 그때 상대방이 강제했는지 등을 함께 봅니다. 한 번 거절했다는 사실을 다른 모든 성행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Q. 친족 사이에서 오랫동안 성관계가 있었다면 모두 준강간인가요?
A. 아닙니다. 친족관계와 기간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폭력과 통제의 내용, 의존관계와 심리 상태 등을 통해 항거불능 및 그 상태를 이용한 행위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7. 마치며
오랫동안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거나 겉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심리적 항거곤란 상태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 안에서 어떤 억압이 지속되었고, 각 행위 당시 저항 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입니다.
법무법인 청출은 피해 경위와 보유한 자료를 함께 확인하여, 단편적인 행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관계의 전체 과정을 정리하고 고소와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진술·증거 제출을 준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