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 엄상윤 변호사입니다.
하도급거래에서는 납기나 사업 일정에 맞추기 위하여 작업을 먼저 진행하고 계약서는 나중에 작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래관계가 오래 유지되었다는 이유로 발주 내용만 간단히 전달하거나, 기존 계약서와 단가합의서를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거래 내용을 알고 있고 실제로 대금까지 지급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하도급법상 서면 발급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도급법은 수급사업자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거래조건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서면의 발급 시기와 기재사항, 서명·날인에 관한 요건을 정하고 있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하였더라도 발급이 늦거나 필요한 내용과 서명이 빠져 있다면 법 위반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202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3건의 제재 사례는 이러한 의무가 거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하에서는 각 사례의 핵심 쟁점을 살펴보고, 기업이 계약 체결과 발주 과정에서 점검하여야 할 사항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서면 발급의무는 언제 어떤 내용으로 이행하여야 하는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제조·수리·건설·용역을 위탁할 때 법에서 정한 내용을 기재한 서면을 수급사업자에게 발급하여야 합니다. 제조위탁은 물품 납품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기 전, 용역위탁은 용역수행행위를 시작하기 전이 발급 기한입니다. 최초 계약 이후의 추가·변경위탁에도 원칙적으로 같은 의무가 적용됩니다.
서면에 담아야 할 내용 역시 중요합니다. 법 제3조 제2항과 시행령 제3조에 따라 위탁일과 목적물의 내용, 납품 시기와 장소, 검사 방법과 시기, 하도급대금과 지급방법, 지급기일 등을 명확히 기재하여야 합니다. 하도급대금의 조정요건, 방법, 절차를 갖추고, 해당 거래에 적용되는 하도급대금 연동 관련 사항도 확인하여야 합니다. 양 당사자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규정은 수급사업자가 부담할 업무와 그 대가를 사전에 확정하고, 사후에 거래조건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준수 여부를 점검할 때에는 계약서의 보유 여부뿐 아니라 실제로 언제 발급되었는지, 필요한 거래조건이 기재되어 있는지, 당사자의 의사가 적절한 서명·날인으로 확인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다만, 거래조건이 반드시 하나의 문서에 모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계약서와 개별 발주서 등을 통하여 법정 기재사항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실제 사용되는 문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검토하여야 합니다. 반대로 기본계약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거래의 품목·수량·단가나 추가 작업의 범위까지 모두 정해진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필수 기재사항이 누락된 계약서의 경우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2020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16개 수급사업자에게 자동차 부품용 금형 120건의 제조를 위탁하였습니다. 이 중 45건은 계약서면을 전혀 발급하지 않았고, 나머지 75건은 하도급대금 조정의 요건·방법·절차 등 필수 기재사항이 누락된 계약서를 발급하였습니다. 후자의 75건 중 6건은 작업 착수 후 최소 1일에서 최대 328일이 지나서야 서면이 발급되었습니다.
이에 공정위는 서면 발급의무 위반에 대하여 재발방지명령과 과징금 1억 2,000만 원을 부과하였습니다. 계약서가 존재하는 거래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발급 시기가 늦으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계약조건과 대금 지급 과정의 위반도 함께 확인되었습니다. 수급사업자가 검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거나, 수정계약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사업자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는 특약 등이 문제되었습니다. 검사 결과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은 행위와 지연이자 6,841만 원 및 어음대체결제수단 수수료 1,031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행위도 적발되었습니다.
공정위는 부당특약과 검사 결과 미통지에 대해서는 재발방지명령을, 지연이자·수수료 미지급에 대해서는 재발방지명령과 과징금 2,400만 원을 부과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전체 과징금은 1억 4,400만 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다른 위반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면 발급의무 위반의 과징금이 일률적으로 가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위 사례에 비추어, 계약서의 형식과 내용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수 기재사항을 보완하는 한편, 검사·계약 변경·해지 조항에 수급사업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도 점검하여야 합니다. 서면을 적시에 발급하는 것과 그 서면의 거래조건이 적법한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작업 착수 후 계약서를 발급하는 관행의 위법성
정보시스템 구축·유지보수 등을 수행하는 B사는 2022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394개 수급사업자에게 652건의 용역을 위탁하면서, 용역수행이 시작된 후 최소 1일에서 최대 58일이 지나 계약서를 발급하였습니다. 공정위는 이러한 서면 지연 발급에 대하여 재발방지명령과 과징금 2억 1,100만 원을 부과하였습니다.
공정위는 과징금을 정하면서 거래 수급사업자의 약 85.4%가 영향을 받았고, 서면 발급 없이 용역을 위탁하는 행위가 2년 넘게 지속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거래에서 발생한 일회성 실수를 넘어, 계약서를 사후에 발급하는 방식이 다수 거래에 걸쳐 장기간 반복되었다는 사정이 제재 판단에 반영된 것입니다.
실무상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내부 결재일과 실제 작업 착수일 사이의 간격입니다. 계약서가 최종적으로 보관되어 있더라도 발급 전에 인력이 투입되거나 개발·제작이 시작되었다면 지연 발급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업 부서가 작업을 지시하고 구매·계약 부서가 뒤늦게 서면을 정리하는 구조에서는 같은 위반이 반복되기 쉽습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발주와 계약 체결 절차를 연결하여, 수급사업자에게 적법한 서면이 발급되었는지 확인한 후 작업을 지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서면의 작성일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실제 발급 사실과 시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함께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단가합의서의 서명·날인이 누락된 경우
가정용 난방기기 제조업체인 C사는 2021년 6월부터 2024년 6월까지 98개 수급사업자에게 부품 제조를 위탁하면서, 436건의 단가합의서에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누락하였습니다. 일부 문서는 서명란에 직인이 빠져 있었고, 회사 대표성이 없는 실무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하여 발송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양식 자체에 수급사업자의 서명란만 있고 원사업자의 서명란이 없는 경우도 확인되었습니다.
공정위는 이를 하도급법 제3조의 서면 발급의무 위반으로 보아 재발방지명령과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하였습니다. 단가합의서는 하도급거래의 핵심 조건인 납품 단가를 정하는 문서이므로, 당사자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갖추어 교부하여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사례는 계약 관리의 범위를 기본계약서에 한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기본계약서에 적절히 서명·날인하였더라도 개별 단가나 변경 조건을 정하는 별도 문서에서 필요한 요건이 누락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 담당자는 실제 거래조건을 정하는 단가합의서와 변경합의서까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서명 권한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무자가 서명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그 서명이 회사를 대표하거나 적법하게 위임받은 권한에 기초한 것인지는 확인되어야 합니다. 사내 계약 체결 권한과 위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양 당사자의 서명·날인이 빠지지 않도록 문서 양식과 승인 절차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서명·날인 누락이 하도급법상 서면 발급의무 위반으로 평가된다는 점과, 당사자 사이의 계약이 민사상 유효한지는 구별하여야 합니다. 이 사례를 근거로 서명이 빠진 모든 계약이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계약서 양식과 실제 발주 절차를 함께 점검하여야 합니다
세 사례에서 확인되는 위반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계약 체결과 업무 수행 사이의 관리 공백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데서 나아가, 그 계약서가 실제 거래에서 어떻게 작성·승인·발급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선 기본계약서와 개별 발주서, 단가합의서, 변경합의서를 함께 검토하여 법정 기재사항이 빠짐없이 확인되는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문서 사이에 단가나 지급조건이 다르게 기재되어 있지는 않은지, 추가 작업의 내용과 대금이 서면으로 반영되어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계약 체결 권한과 발급 책임을 명확히 하여야 합니다. 현업 부서의 작업 지시가 계약 담당 부서의 서면 발급보다 앞서지 않도록 절차를 정하고, 전자계약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서명 완료와 상대방에 대한 발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스템 도입만으로 의무 이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미완료 계약을 확인하고 담당자에게 알리는 절차를 함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거래조건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면 발급 전체를 미루는 것도 주의하여야 합니다. 법은 정당한 사유로 위탁 시점에 확정하기 곤란한 사항이 있는 경우 일부 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서면을 발급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사유와 확정 예정기일을 기재하고 해당 사항이 확정되면 이를 반영한 서면을 지체 없이 발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되, 단가 협의나 내부 결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면 없이 작업부터 시작하는 관행을 정당화하여서는 안 됩니다.
수급사업자도 발주 내용과 작업 범위가 서면으로 확인되는지 살펴야 합니다. 서면이 누락되었거나 실제 지시와 내용이 다르면 보완을 요청하고, 발주 이메일, 작업 지시, 견적 협의, 추가 업무 요청 등의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추후 업무 범위나 대금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거래 경위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도급법상 서면 발급의무는 거래조건을 사전에 명확히 하여 수급사업자를 보호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기본적인 장치입니다. 기업은 계약서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작업 착수 전에 필요한 내용과 적절한 서명·날인을 갖춘 서면이 실제로 발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점검이 일상적인 발주 절차에 반영될 때, 반복되는 법 위반을 줄이고 거래관계의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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