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 엄상윤 변호사입니다.
기업 형사 사건에서는 법인뿐만 아니라 임직원 개인이 함께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삭제하거나 은닉하는 행위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증거인멸’ 혹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별도의 기소를 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2026. 1. 15. 선고 2024도15728 판결)은 양벌규정에 의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는 임직원이 증거인멸을 교사한 경우에 있어 증거인멸교사의 성립요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판결의 핵심 내용과 기업 법무 실무에서 고려해야 할 시사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사안의 개요 및 쟁점]
피고인들은 국내 대기업 임직원들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되자 협력사 관련 자료와 이메일 등을 삭제하거나 은닉하도록 지시하고 실행한 혐의(증거인멸교사 및 증거인멸)로 기소되었습니다.
형법 제155조 제1항이 규정하는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할 때 성립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스스로 인멸하거나, 타인에게 자신을 위해 인멸해달라고 '교사'하는 행위 역시 원칙적으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피고인들이 하도급법 위반 행위로 인해 법인과 함께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인멸한 증거는 '타인'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로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하도급법 제31조(양벌규정)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제30조의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科)한다. 다만, 법인 또는 개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대법원의 판단]
원심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법인(회사)'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것이라고 보아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피고인들이 양벌규정 적용에 따라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증거가 될 자료를 인멸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아 원심의 유죄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대법원 판단의 주된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하도급법 제31조와 같은 양벌규정은 법인의 대표자나 임직원이 업무에 관해 위반 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 본인도 함께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증거를 인멸한 임직원이 실질적으로 위반 행위에 관여하여 양벌규정에 따른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가 지운 증거는 곧 '자기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에 해당하여 증거인 또는 증거인멸교사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② 인멸된 증거가 법인(회사)이나 다른 공동 피고인의 형사사건 증거가 되기도 하는 '공통 증거'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은 "그 증거가 피고인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이기도 하다면, 설령 그것이 동시에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라 할지라도 이를 인멸하거나 타인에게 인멸을 교사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③ 이러한 전제에서,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증거 인멸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심리가 더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피고인들이 단순히 직책상 지시를 내린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하도급법 위반 행위의 실행에 가담하여 양벌규정의 적용을 받는 '행위자'에 해당하는지를 엄밀히 따져보아야 하는데, 원심은 이에 대한 심리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실무적 시사점]
공정거래 등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다수의 법률은 양벌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 법인뿐만 아니라 관련 임직원들의 법적 지위를 검토하여 수사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회사가 피의자로 수사를 받게 될 경우, 내부 조사를 통해 어떤 임직원이 실질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관여했는지 빠르게 파악하여 해당 임직원의 자기방어권 행사 범위를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위와 같은 판례가 기업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행위에 대하여 면제부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여야 합니다. 위 대법원의 판단은 임직원의 증거 인멸이 처벌될 수 없다는 취지가 아니라, ‘타인의 형사사건’ 여부에 대한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위계적 수단을 사용하여 수사기관을 기망하는 등 방어권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에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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