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 엄상윤 변호사입니다.
대형 조선사 또는 건설사가 사내협력사를 운영하면서 위탁 업무의 서면화, 하도급대금 결정 방식, 위탁 취소·변경 절차 등을 실무 관행에 따라 처리하다가 하도급법 위반으로 처분을 받는 사례는 여러 차례 있어 왔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대법원은 어느 조선사 A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에 관한 상고심에서, (i) 위반행위 세 유형의 성립 요건을 정면으로 확인하는 한편, (ii) 위반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서면발급의무 위반에 대한 정률과징금 부과가 개정 하도급법 시행령이 도입한 정액과징금 체계와의 균형을 잃은 경우에는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오늘은 위 판결의 사실관계와 세 유형의 위반에 대한 대법원의 판시를 정리한 뒤, 특히 정률과징금과 정액과징금 사이의 격차가 재량권 통제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는 흐름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사건의 개요
이 사건 처분의 대상은 대형 조선사 A로,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 2. 8. A에 대하여 시정명령과 함께 152억 9,400만 원의 과징금납부명령을 하였습니다. 소송 계속 중 공정거래위원회는 유사 사안 확정판결(대법원 2024. 11. 28. 선고 2024두35125 판결) 취지를 반영하여 감경률을 상향 적용하고 51억 2,700만 원을 직권으로 취소하여, 최종 부과과징금은 101억 6,700만 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다투어진 위반행위는 세 가지 유형이었습니다. 첫째, 서면발급의무 위반은 선박건조 공정과 밀접한 발판설치, 운반, 운전 등 작업을 사내협력사에 위탁하면서 원고가 전자계약시스템상 외주시공계약서 발송에는 이르렀으나 양당사자 전자서명까지 마치지 아니한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된 수정추가공사 6,168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한 하도급대금 결정은 수정추가공사에서 이른바 '선시공 후계약' 형태로 작업을 먼저 진행한 뒤 원고가 내부 절차만으로 수정추가시수를 결정하여 하도급대금을 산정한 관행이 문제되었습니다. 셋째, 부당한 위탁취소·변경은 원고가 사내협력사에 위탁한 111,500건의 거래 중 상당수에서 실질적 협의 없이 취소·변경이 이루어진 사안이었습니다.
대법원의 판시: 위반 성립과 '낮은 단가' 예외 법리
대법원은 세 유형 모두에 관하여 원심의 법 위반 인정을 수긍하였습니다. 각 유형별로 확인된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면발급의무 위반의 판단 기준
먼저 서면발급의무 위반에 관하여, 대법원은 서면발급일은 원고와 사내협력사가 전자계약시스템상 외주시공계약서에 전자서명까지 모두 마친 날을 의미하며, 원고가 외주시공계약서를 작성하여 수급사업자에게 발송한 것만으로는 하도급법상 서면발급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나아가 서면을 발급하지 못한 데에 관한 정당한 사유의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원사업자에게 있고, 그 판단은 발급된 서면 일부 사항의 기재 누락에 관한 정당한 사유보다 엄격하여야 한다는 대법원 2024. 11. 28. 선고 2021두49208 판결의 법리도 재확인되었습니다.
일방적 낮은 단가와 예외적 제조원가 기준
다음으로 하도급법 제4조 제2항 제5호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요건에 관하여, 대법원은 (i) 원사업자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 (ii) 수급사업자의 거래의존도, (iii) 계속적 거래관계의 유무·정도, (iv) 하도급대금 결정 과정에서 수급사업자의 협의 자율성 제약 여부, (v) 결정된 대금으로 인한 수급사업자의 불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종전 법리를 다시 확인하였습니다(대법원 2017. 12. 7. 선고 2016두35540 판결, 대법원 2018. 3. 13. 선고 2016두5943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는 사내협력사가 원고에 대한 거래의존도가 높고 거래 단절 가능성이 있는 불안한 지위였다는 점, 수정추가공사가 하도급대금 확정 없이 '선시공 후계약'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점, 하도급대금 산정의 핵심인 수정추가시수의 결정이 원고 내부 절차만으로 이루어져 사내협력사가 정보 제공, 의견 제시, 이의 제기의 통로를 갖지 못하였다는 점 등이 결정적 사정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특히 실무상 의미가 큰 것은 '낮은 단가' 판단에 관한 예외 법리입니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종전 거래의 내용이나 비교 대상 거래에서 형성된 대가 수준을 기준으로 낮은 단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며, 단순히 종전 거래, 비교 대상 거래에 관한 증명이 어렵다는 사정만으로 수급사업자의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낮은 단가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확인하였습니다. 다만 (i) 종전 거래나 비교 대상 거래를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ii) 원사업자가 위탁 목적물을 수급사업자로부터 납품받은 후에 비로소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면서, (iii) 수급사업자의 가격 협상력이 낮아진 상태를 이용하여 실질적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것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수급사업자의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낮은 단가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11. 28. 선고 2024두35125 판결 참조). 이러한 예외 법리가 이 사건에 적용된 것은 수정추가공사의 '선시공 후계약' 관행 자체가 수급사업자의 가격 협상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키는 성격을 지녔다는 사정 때문입니다.
부당한 위탁취소·변경
마지막으로 부당한 위탁취소·변경에 관하여, 대법원은 원고가 사내협력사에 위탁한 111,500건 중 (i) 계약 체결 이전에 취소된 건, (ii) 수급사업자 귀책으로 취소·변경된 건, (iii) 실질적 협의를 거친 건에 해당하는 33,229건은 부당성 인정에서 제외하되, 나머지 78,271건은 실질적 협의 없이 취소·변경된 것으로서 부당한 위탁취소·변경에 해당한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하였습니다.
정률·정액 과징금의 격차와 재량권 일탈·남용에 관한 판단
이 판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과징금 재량권 일탈·남용 판단에 관한 대법원의 판시입니다. 원고의 상고이유가 결과적으로는 배척되었으나, 그 이유가 원고의 실체 주장이 부당해서가 아니라 원심이 이미 해당 부분 과징금을 전부 취소하여 원고 상고이유가 판결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대법원은 원고의 재량권 일탈·남용 주장을 실체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절차적 이유로 상고를 기각한 셈입니다.
정률·정액 격차
대법원이 재량권 일탈·남용을 인정한 근거는 정률과징금과 정액과징금 사이의 극단적 격차입니다. 관련 하도급대금이 1.4배, 위반건수가 1.5배 차이인 상황에서 과징금은 20배 이상의 격차가 발생한 것입니다.
구분 | 2016. 7. 24. 이전(정률과징금) | 2016. 7. 25. 이후(정액과징금) |
|---|---|---|
피해 수급사업자 수 | 155업체 | 192업체 |
위반 건수 | 10,071건 | 6,607건 |
관련 하도급대금 | 약 1,026억 원 | 약 747억 원 |
부과 과징금(감경 후) | 76억 6,200만 원 | 3억 3,300만 원 |
과징금 격차 | 정률과징금이 정액과징금 대비 약 20배 이상 과중 | |
과징금 산정 재량권의 한계에 대한 판시
대법원은 이러한 극단적 격차가 발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i) 서면발급의무 위반은 위반금액이 없어 원사업자가 취득한 이익 규모를 파악하기 곤란한 유형인데도 정률과징금은 하도급대금 총액에 연동되어 산정되므로 위반의 실질과 무관하게 과중해질 수 있다는 점, (ii) 개정 하도급법 시행령이 위반금액 비율을 곱하는 방식과 정액과징금을 도입하여 원사업자가 얻은 불법적 이익의 정도에 비례하도록 부과기준을 합리화한 이후에는, 그 취지를 부과과징금 결정 단계에서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 (iii) 서면발급의무 위반이 개별 사안에서 아무리 다수 건에 걸쳐 있다 하더라도 위반의 성격이 이익 취득과 결부되지 아니한 이상 그 제재는 부당이득 환수보다는 위반 억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 등입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관점에 서서 50% 감경을 적용하더라도 여전히 과징금이 부당이득 환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과중하며 제재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공정위에게 과징금 산정에 관한 넓은 재량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산정이 관련 법령과 법 위반 행위의 불법성에 비례한 것이 아니라면 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서 위법일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원사업자에 대한 시사점
원사업자의 실무 관점에서 정리하면, 대형 조선사, 건설사 등 사내협력사 구조를 운영하는 사업자는 다음의 지점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① 서면 발급은 작성·발송이 아닌 양당사자 전자서명 완료 시점이 기준이므로 전자계약시스템 운영 프로세스를 그에 맞추어 재정비하여야 합니다. ② 수정추가공사, 설계변경 등 사후 정산이 잦은 업무에서는 '선시공 후계약' 관행 자체가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므로, 착공 이전 단계에서 잠정 대금 결정과 정산 절차를 서면화하는 관행 정비가 요구됩니다. ③ 위탁 취소·변경은 반드시 실질적 협의를 거친 문서 기록과 함께 이루어져야 부당성 판단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④ 대규모 위반 사건에서 정률과징금이 부과된 경우 개정 하도급법 시행령의 정액과징금 체계와의 격차를 근거로 재량권 일탈·남용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이 판결로 명확해진 만큼, 사후적으론 이 판시를 활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원사업자에 대한 하도급법 규제가 위반 성립 판단에서는 여전히 기존 법리에 따라 유지되는 한편, 과징금 산정 단계에서는 위반의 실질과 이익 규모에 비례하여야 한다는 재량권 통제의 원칙이 함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최근 정부의 과징금고시 개정 흐름이 부과기준 자체를 대폭 상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후 통제가 어떤 사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정될지는 향후 축적될 후속 판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 실무를 통해 계속 정밀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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