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하도급] 발주업체가 넘겨받은 도면으로 모방 변압기를 10년 넘게 납품한 사건,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 보호기간 대법원 2024다226825 판결

[지식재산·하도급] 발주업체가 넘겨받은 도면으로 모방 변압기를 10년 넘게 납품한 사건

[지식재산·하도급] 발주업체가 넘겨받은 도면으로 모방 변압기를 10년 넘게 납품한 사건

[지식재산·하도급] 발주업체가 넘겨받은 도면으로 모방 변압기를 10년 넘게 납품한 사건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 엄상윤 변호사입니다.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한 중소·중견 제조업체가 발주업체에 도면, 시제품, 기술자료를 제공하여 납품한 뒤, 발주업체가 그 자료를 활용하여 직접 제조하거나 다른 거래선을 통해 모방 제품을 공급하는 분쟁은 하도급거래 실무에서 적지 아니하게 접하는 유형입니다. 종전에는 이러한 분쟁이 (i) 영업비밀 침해, (ii) 계약 위반, (iii) 일반 불법행위의 세 갈래로 다루어져 왔으나, 2013년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에 (카)목(현행 (파)목)이 신설되면서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로 규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성과도용의 성립을 전제로 하더라도 실무에서는 '보호기간을 어떻게 획정할 것인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하급심 상당수는 영업비밀 보호기간 법리를 유추하여 성과 등의 보호기간을 일률적으로 10년 전후로 제한하는 접근을 취해 왔고, 이로 인해 10년이 지난 모방 납품은 더 이상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로 다툴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다만 최근 대법원은 2024다226825 판결(원심 대전고등법원 2022나13337)에서 성과 등의 보호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법리를 선언하고 원심 중 보호기간 경과 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이하에서는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요건,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보호기간 획정 법리, 하도급거래 실무에서 유의할 지점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요건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현행 (파)목)은 2013. 7. 30. 법률 제11963호로 신설된 조항으로, 대법원은 이를 '변화하는 거래관념을 적시에 반영하여 부정경쟁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보충적 일반조항'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즉 종전 부정경쟁방지법의 열거적 유형에 포함되지 아니한 새로운 유형의 부정경쟁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성격이 분명합니다.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9다282449 판결 등 참조).

(i) 보호대상인 '성과 등': 결과물이 갖게 된 명성이나 경제적 가치, 결과물에 화체된 고객흡인력, 해당 사업분야에서 결과물이 차지하는 비중과 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됩니다.

(ii)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 권리자가 투입한 투자나 노력의 내용과 정도를 그 성과물이 속한 산업분야의 관행이나 실태에 비추어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되며, 침해된 경제적 이익이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iii)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 권리자와 침해자의 경쟁관계 또는 가까운 장래의 경쟁관계 가능성, 해당 산업분야 상거래 관행·경쟁질서의 공정성, 성과 등이 침해자의 상품·서비스에 의하여 시장에서 대체될 수 있는지, 수요자·거래자에게 성과 등이 어느 정도 알려졌는지, 그들의 혼동가능성 등을 종합 고려하여 판단됩니다.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는 영업비밀이나 특허·실용신안·디자인 등 등록·요건이 명확한 지식재산권의 '빈틈'을 메우는 보충적 조항으로 기능합니다. 이에 그 성립 여부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성과물의 성격과 산업분야 관행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되 보호대상이 공공영역으로 환류되지 아니하였는지를 엄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사안의 주된 내용: 발주업체의 ‘도면 전환’ 모방

한국철도공사는 철도차량 제작업체(소외1 회사)에 동력분산식 철도차량의 제작을 발주하고, 그 소외1 회사가 피고(중간 발주업체)에게 변압기 제작을 발주하였으며, 피고가 원고(변압기 제작업체)에게 그 변압기의 제작·공급을 의뢰하였습니다.

원고는 2010. 4. 27. 피고와 사이에 변압기 제작·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2011년 초경 EMU-180 변압기 16대를 공급하였으며, 2012. 5. 25.부터 EMU-150 변압기 47대를 추가로 공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에게 교부된 도면에는 '비밀정보 포함', '원고 자산', '원고의 승인 없이 사용하는 행위 금지' 등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이후 원고를 거치지 아니한 채 (i) 소외1 회사, (ii) 한국철도공사, (iii) 소외 2 회사(두 차례)로부터 EMU-150 변압기 제작을 직접 수주하여 원고의 변압기와 도면을 거의 그대로 모방한 변압기를 제조·납품하였습니다(이하 각 '제1 ~ 제4 납품행위').

원심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i) 제1 납품행위는 (카)목 시행 전에 이루어졌으므로 (카)목이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으나, 피고가 원고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것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ii) 제2, 제3 납품행위는 (카)목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

(iii) 이 사건 변압기 기술의 보호기간은 원고의 최초 납품 시(2011년 초경)부터 10년으로 보아야 하므로, 보호기간 경과 후인 2021. 5. 11. 피고가 소외 2 회사와 체결한 계약에 따른 제4 납품행위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원심은 제1~제3 납품행위에 대하여만 피고의 금지·폐기 의무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고, 제4 납품행위에 관한 청구는 보호기간 경과를 이유로 배척하였습니다.

보호기간 획정의 법리

판례상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함에 필요한 시간적 범위 내에서 기술의 급속한 발달상황 및 변론에 나타난 침해행위자의 인적·물적 시설 등을 고려하여 침해행위자나 다른 공정한 경쟁자가 독자적인 개발이나 역설계와 같은 합법적인 방법에 의하여 그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상당한 기간 동안으로 제한하여야 하고, 영구적인 금지는 제재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을 조장하고 종업원들이 그들의 지식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는 공공의 이익과 상치되어 허용될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등).

다만 이 사건의 대법원은 성과등의 보호기간을 판단함에 있어 영업비밀 보호기간 법리를 기계적으로 유추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즉, 대법원은 제1, 제2, 제3 납품행위 부분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피고의 상고 기각), 제4 납품행위에 관한 보호기간 판단만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카)목의 '성과 등' 보호기간을 영업비밀 보호기간 법리에 기계적으로 유추하여 일률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이 들고 있는 사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i) 원고는 장기간에 걸쳐 쌓아 온 철도차량용 변압기 제작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계약 요구에 맞춘 맞춤형 변압기를 제작하였고, 그 기술력은 관련 분야 논문·조사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ii) 피고는 원고와의 계약을 위반하여 계약 목적을 벗어나 변압기 기술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원고의 변압기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변압기를 제조·납품하였다.

(iii) 원고와 피고는 철도차량용 변압기를 제조·납품하는 경쟁관계에 있고, 피고의 모방이 없었다면 EMU-150 변압기 기술력을 단기간에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iv) 원심이 보호기간 경계로 삼은 2021년 초경을 전후하여 보더라도, 제3 납품행위와 제4 납품행위는 각 종기 간격이 2개월 정도에 불과하고 납품대상이 동일하며 기술적 특징, 피고의 기술력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따라서 두 납품행위의 보호가치에 실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v) 피고가 2023. 8. 31.까지 제4 납품행위를 통하여 납품한 변압기도 여전히 2011년 초경 원고로부터 최초 제공받은 변압기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이고, 공공영역에 속한다고 볼 자료도 없으므로, 이 사건 변압기는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보호가치 있는 성과물에 해당한다고 볼 소지가 크다.

이러한 논거를 종합하여 대법원은 '성과 등'의 보호기간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는 이유로 제4 납품행위에 관한 주위적 청구를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은 하도급거래 실무에서 발생하는 '발주업체의 기술탈취' 분쟁에 유용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성과물의 보호기간은 (i) 성과물에 투입된 기술과 노하우의 축적 정도, (ii) 산업분야에서 성과물이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는지, (iii) 공공영역에 환류되었는지, (iv) 침해자의 지속적 모방으로 기술적 변화가 없이 동일한 성과물이 재생산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동일 사안의 영업비밀과 동일하게 판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대법원이 이번 판결로 성과물에 대한 보호기간 제한 자체를 부정한 것인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 역시 사안에 따라 보호기간을 제한할 합리적 필요성이 있다면 달리 판단될 수 있는 문제로 보입니다.

한편 발주업체가 수급업체로부터 받은 도면, 시제품, 기술자료를 활용하여 수급업체를 배제하고 직접 공급하거나 다른 거래선을 통해 모방 공급하는 유형은, 하도급법 제12조의3의 기술자료 유용에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에 수급업체 측에서는 (i) 영업비밀 침해, (ii) 성과도용 부정경쟁행위, (iii) 기술자료 유용 금지(하도급법), (iv) 계약 위반이라는 복수의 청구원인을 중첩적으로 검토하여야 하고, 발주업체 측에서는 도면 교부 시의 비밀표시, 사용제한 조항이 사후 '성과물 보호가치' 판단의 주된 요소가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성과도용 규정이 보충적 일반조항으로 설계된 이상, 그 성립 여부와 보호기간 역시 '사안별로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판결로 영업비밀 보호기간 법리가 다른 영역에 기계적으로 유추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된 만큼, 하도급거래 실무에서 수급업체의 구제수단으로 성과도용 규정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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