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가 나왔다 한 줄로 유죄가 될까 - 대법원 2026도4423 판결과 과학적 증거의 증명력

[형사] "DNA가 나왔다" 한 줄로 유죄가 될까

[형사] "DNA가 나왔다" 한 줄로 유죄가 될까

[형사] "DNA가 나왔다" 한 줄로 유죄가 될까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의 이경준 변호사입니다.

형사 재판에서 "DNA가 나왔다"는 한 줄은 가장 강력한 무게를 가진 증거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옷이나 침구류에서 검출된 피고인의 DNA가 사실상 유죄·무죄를 가르는 결정적 증거로 기능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DNA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인정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대법원이 이 부분에 관하여 분명한 한계를 다시 정리한 판결을 최근 선고하였습니다.

「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6도4423 판결」(강간, 파기환송)은 ① 항소심이 1심 무죄를 뒤집을 수 있는 경우의 한계와 ② DNA를 비롯한 과학적 증거의 증명력 인정 기준을 함께 정리한 판결로, 형사 변호 실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1.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2021. 8. 27. 피해자를 강간하였다는 사실로 기소되었습니다. 1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검사는 사건일로부터 약 2년 5개월이 경과한 2024. 1. 26. 피해자가 제출한 "당시 입었다는 바지"를 새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위 바지에서는 피고인 DNA뿐 아니라 피해자 DNA, 불상 남성의 DNA도 검출되었고, 항소심은 이를 근거로 1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항소심 판단에 ① 항소심 사후심적 속심 구조에 관한 법리, ② 과학적 증거의 증명력 인정 기준에 관한 법리를 각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보아 사건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2. 항소심이 1심 무죄를 뒤집을 수 있는 경우

우리 형사소송법상 항소심은 1심 자료를 그대로 이어받아 사실관계를 다시 판단하는 '속심'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1심 판단의 당부를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사후심'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강학상 '사후심적 속심'이라고 부릅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1심 판단을 뒤집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① 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이거나, ② 항소심 심리 중에 심증 형성에 영향을 미칠 새 객관적 자료가 드러난 경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견해가 다르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1심 판단을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항소심에 새 객관적 자료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3. 과학적 증거(DNA 등)의 증명력 인정 기준

대법원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가 사실인정에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지려면 ① 전제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② 추론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하여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경우라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구체적 요건으로는 ① 증거방법이 전문 지식·기술·경험을 가진 감정인에 의하여 공인된 표준 검사 기법으로 분석되었을 것, ② 채취·보관·분석 전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될 것을 들었습니다.

특히 과학적 증거가 공소사실의 유일하거나 유력한 증거일수록 "과학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로 엄격한 증명의 원칙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DNA 감정처럼 한 줄로 표현되는 강력한 증거일수록 그 증거가 '진짜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4. 대법원이 본 사건에서 항소심을 파기한 이유

첫째, 항소심이 추가로 채택한 DNA 감정서의 대상물인 바지는 사건일로부터 2년 4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야 비로소 제출되었고, 그 사이의 보관 과정과 지연 제출 경위에 대한 심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위 바지에서는 피고인·피해자 DNA 외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불상 남성의 DNA가 검출되었는데, 이는 바지가 사건 이후 외부 요인에 노출되었거나 다른 사정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검사로서는 보관 경위·동일성 유지·조작 부존재에 관하여 추가 증명을 할 필요가 있고, 항소심도 이를 토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시 검토하거나 DNA 감정서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도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별도로 살폈어야 한다고 보아 사건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5. 이번 판결의 실무적 의미

이번 판결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 항소심에서 뒤집히는 과정에 대한 통제 잣대가 다시 분명해졌습니다. 검사가 항소심에 새 증거를 제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1심 무죄가 뒤집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가 1심 판단 유지를 "현저히 부당"하게 만들 정도여야 합니다.

또한 사건 발생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 제출되는 '지연 제출 증거'는 증명력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보관 주체·보관 환경·지연 제출 경위를 적극적으로 다투고, 채취·보관·분석 전 과정의 동일성을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위 판결은 성범죄뿐 아니라 폭행·상해·재산범죄 등 다른 형사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일반 법리입니다. CCTV·디지털 포렌식·마약 감정서 등 다양한 과학적 증거에 같은 잣대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6. 의뢰인이 사건 초기에 확인해야 할 사항

DNA·CCTV·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적 증거가 핵심 쟁점인 사건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언제·어디서·누구에 의해·어떤 절차로 수집·보관·분석되었는가"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① 증거물이 사건 직후 즉시 확보되었는지 아니면 지연 제출인지, ② 사건 시점부터 제출 시점까지 보관 주체·환경이 어떠하였는지, ③ 감정인이 공인 자격을 갖추었고 표준 검사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④ 대상물에서 제3자 DNA·지문 등 다른 흔적이 검출되었는지, ⑤ 채취·보관·분석 동일성을 입증할 사진·일지·서류가 갖춰져 있는지를 정리해야 합니다.

항소심 단계라면 검사가 새로 제출하는 증거가 위 대법원 판결에서 말하는 "1심 판단 유지를 현저히 부당하게 만드는 새 객관적 자료"에 해당하는지 자체를 다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7. 마무리

이번 대법원 판결은 "DNA가 검출되었다"는 한 줄에 기대어 형사 재판이 단순화될 위험을 경계한 판결입니다. 과학적 증거의 무게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과학성을 '제대로 검증한 후에야'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판결로 이해해야 합니다.

DNA·CCTV·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적 증거가 결정적 쟁점인 사건, 특히 1심 무죄가 항소심에서 위기를 맞은 사건이나 사건일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나 새 증거가 등장한 사건이라면 위 판결의 기준에 비추어 정밀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 형사전문변호사와 상담하여 변론 전략을 함께 설계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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