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 엄상윤 변호사입니다.
공급업자가 자신의 제품을 유통하는 대리점이나 소매점에게 일정한 판매가격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유통단계의 가격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로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은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제조사가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관리, 브랜드 이미지 유지, 출혈경쟁 방지 등을 명목으로 유통점의 가격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행위까지가 적법한 가격관리이고 어느 시점부터가 위법한 가격강제인지에 관한 판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2026. 5. 26. 약국 전용 건강기능식품 유통업체에 대하여 약 8년간 약국에 대한 판매가격을 지정·강제한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46조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시정명령(향후 행위금지명령 및 거래 약국에 대한 통지명령)을 부과하였습니다. 오늘은 위 처분의 구체적 내용과 함께 종래 대법원이 정립한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위법성 판단 법리, 그리고 제조·공급업자가 유의해야 할 실무적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공정거래법 제46조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 규제와 대법원의 판단 법리
공정거래법 제2조 제20호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사업자가 상품 또는 용역을 거래할 때 거래상대방인 사업자 또는 그 다음 거래단계별 사업자에 대하여 거래가격을 정하여 그 가격대로 판매 또는 제공할 것을 강제하거나 그 가격대로 판매 또는 제공하도록 그 밖의 구속조건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같은 법 제46조 본문에서 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같은 조 단서 제1호는 "효율성 증대로 인한 소비자후생 증대효과가 경쟁제한으로 인한 폐해보다 큰 경우 등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골프용품 수입·판매업체가 대리점에 대하여 일정한 가격 이하로의 판매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대리점에 대해 거래정지 등의 불이익을 부과한 사안에서,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며, 그 정당한 이유의 존재에 관한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사업자에게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2010두9976 판결). 즉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그 자체로 위법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합리의 원칙'에 따라 위법성을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위 판결에서 제시한 '정당한 이유'의 구체적 판단 요소는 (i) 관련시장에서 상표 간 경쟁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여부, (ii) 그 행위로 인하여 유통업자들의 소비자에 대한 가격 이외의 서비스 경쟁이 촉진되는지 여부, (iii) 소비자의 상품 선택이 다양화되는지 여부, (iv) 신규사업자가 유통망을 원활히 확보하여 관련 상품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되는지 여부 등이며,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소비자후생을 증대시키는지를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위 판결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와 하급심은 사업자가 주장하는 '정당한 이유'를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단순히 가격경쟁의 안정화나 출혈경쟁 방지라는 일반적 이익만으로는 정당한 이유로 인정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위 및 위법성 판단
약국용 건기식 유통회사 A는 약국을 통하여서만 자사 제품을 유통하는 회원제 기반의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체로, 2017. 10.경부터 2025. 8.경까지 약 8년간 회원전용 쇼핑몰의 공지 사항·홈페이지 배너·단체 문자메시지·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자사 제품의 소비자 판매가격을 지정하고 거래 약국이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A는 (i) 할인판매, (ii) 사은품 증정(이른바 '덤으로 껴주기'), (iii) 온라인 판매, (iv) 비거래처에 대한 공급 등을 '비정상 판매'로 규정하고 정가 판매를 지속적으로 압박하였습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A가 위반행위 적발을 위하여 동원한 수단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에 의하면, A는 (i) 거래 약국에게 비정상 판매 약국에 대한 제보를 촉구하고, (ii) 제보가 접수되면 이른바 '미스터리 쇼퍼'를 활용한 비밀 평가를 실시하였으며, (iii) 비거래처나 온라인에서 자사 제품이 할인 판매되는 경우 제품의 바코드 또는 전파 식별코드(RFID)를 추적하여 해당 판매처에 제품을 공급한 약국을 역추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니터링을 거쳐 적발된 약국에 대해서는 1차 경고, 2차 공급 중단 등의 단계적 제재가 부과되었고, 이 기간 동안 최소 75개 약국이 실제 제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와 같은 행위에 관하여, A와 거래하는 약국들은 독립된 사업자로서 자율적으로 판매가격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함에도, A가 약국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소비자 판매가격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유통단계에서의 가격경쟁을 제한하고 사업자의 자율성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여, 위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46조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본 사건에서는 공정거래법 제46조 단서가 정한 '정당한 이유'의 인정 여부 역시 쟁점이 될 수 있으나, A의 위와 같은 강도 높은 모니터링·제재 체계는 앞서 본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서비스 경쟁 촉진'이나 '소비자후생 증대' 등의 정당화 사유와 결합되기 어려운 구조로 보이고,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무적 시사점
위 처분과 관련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제조·공급업자가 유통구조를 관리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실무적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먼저 제조·공급업자가 활용할 수 있는 가격관리 수단의 적법성에 관하여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 및 안내는 그 자체로 위법한 가격강제로 평가되지 아니하지만, 이를 준수하지 아니하는 거래상대방에 대하여 거래 정지·물량 제한·인센티브 박탈 등의 불이익을 부과하거나, 위반행위 감시를 위한 적극적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운영하는 경우에는 본 사건과 같이 재판매가격유지행위로 평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본 사건에서 동원된 미스터리 쇼퍼, 바코드 및 RFID 추적, 단체 채팅방을 통한 제재 약국 공표 등의 수단은 가격강제의 의사를 강력하게 추단케 하는 사정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공정거래법 제46조 단서가 정한 '정당한 이유'의 인정은 실무상 매우 제한적입니다. 대법원 2010두9976 판결이 합리의 원칙을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은 사업자가 주장하는 '정당한 이유'를 엄격하게 심사하여 그 인정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제조·공급업자로서는 사후적으로 '정당한 이유'를 주장하는 방어전략에 의존하기보다는, 사전적으로 거래상대방의 가격결정 자율성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거래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훨씬 안전한 대응 방안입니다.
또한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한 제재의 수준 역시 가볍지 아니합니다. 공정거래법 제49조는 위반사업자에 대한 시정조치를, 제50조는 관련 매출액의 4% 이하 또는 매출액이 없거나 산정이 곤란한 경우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 부과를 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으나, 시정명령에 따르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별도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위반행위 기간 중의 매출 규모가 클수록 과징금 수준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사건의 경우 시정명령에 그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향후 동종·유사 사안에서는 과징금이 함께 부과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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