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출 엄상윤 변호사입니다.
기업 또는 개인이 형사 수사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기 위해 작성된 법률자문서, 의견서, 이메일 등은 사건의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자료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대로 노출된다면, 의뢰인은 변호인에게 솔직하게 사실관계를 털어놓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형해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 이하 "ACP")의 도입 논의가 오랜 기간 진행되어 왔는데, 2026. 1. 29.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ACP가 우리나라 법률에 정식으로 도입되었습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대법원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의해 ACP가 보호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오늘은 ACP 도입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무적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변호사법 개정 및 ACP 도입
종래 변호사법 제26조는 변호사에게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아니할 '의무'만을 부과하고 있었을 뿐, 의뢰인이 변호사와의 의사교환 내용을 공개하지 아니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수사기관 등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변호사 스스로 준수해야 할 의무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였고, 의뢰인이나 변호사가 이를 근거로 압수수색이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ACP를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우리나라 법제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에 ACP 도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는바, 최근 개정된 변호사법은 제26조의2(비밀유지권 등)를 신설하여 ACP를 명문화하였습니다. 개정법의 핵심은 비밀유지를 권리화 함으로써 변호사 및 의뢰인 모두 의사교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적극적 권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보호 대상이 ①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비밀 의사교환 내용, ② 변호사가 수임 사건과 관련하여 소송·수사·조사를 위하여 작성한 서류 및 자료(전자적 형태 포함)로 폭넓게 규정되어, 변호사가 작성한 의견서 뿐만 아니라 변호사와 의뢰인이 주고받은 이메일, 메신저 대화, 자문 메모, 소송 대비 문서 등이 모두 보호 대상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ACP에 관한 변호사법 주요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정법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의뢰인 및 의뢰인이 되려는 자에게도 자료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바, 정식 위임계약 체결 전 사전 상담 단계에서의 의사교환도 보호 대상에 포함됩니다.
보호 대상은 (i)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법률사건·법률사무에 관한 조력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비밀인 의사교환 내용(제1항)과, (ii) 변호사가 수임 사건과 관련하여 소송·수사·조사를 위하여 작성한 서류 및 자료(제2항)로 구분됩니다.
다만 (i) 의뢰인이 자발적으로 공개를 승낙한 경우, (ii) 변호사가 의뢰인의 범죄·위법행위에 가담한 경우, (iii) 그 밖에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제3항)에는 예외적으로 공개가 허용됩니다. 이는 ACP가 위법행위의 은닉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ACP에 반하여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
ACP가 도입된 개정 변호사법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2027. 2. 19.부터 시행되지만, 부칙 제2조에 따라 시행일 이전에 이루어진 의사교환 내용이나 작성된 자료에 대해서도 개정법이 적용됩니다.
한편 대법원은 개정 변호사법이 시행되기 전인 2026. 2. 20. 자 2024모730 결정과 2026. 2. 26. 선고 2025도4422 판결을 통해, 변호인과 피의자 간의 형사사건 관련 법률자문 문서에 대한 압수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다만 (i) 의뢰인이 압수를 승낙한 경우, (ii) 변호인이 피의자·피고인과 공범관계에 있거나 그 범죄 기타 위법행위에 관여한 경우 등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압수가 허용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2025도4422 판결은 위법하게 압수된 변호인과의 의사소통 자료(변호인과의 통화녹음)가 1차적 증거인 경우, 그로부터 파생된 2차적 증거 역시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여, 피고인이 그 자료를 제시받거나 그 내용을 전제로 신문받은 경우 법정진술이라 하더라도 위법수집증거에 기한 2차적 증거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 판결들은 ACP를 단순한 법률상 권리를 넘어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한 내용으로 보호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개정 변호사법의 시행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절차에서의 ACP가 즉시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무적 시사점
위와 같이 ACP는 이미 적용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실무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기업의 법무담당자 등은 ACP의 보호를 받는 범위를 숙지하고 수사과정 등에서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ACP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법률자문 자료의 외관과 형식을 갖추어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 업무 자료와 법률자문 자료를 명확히 구분하여 보관하고, 자문 문서에는 'Attorney-Client Privilege' 또는 '비밀유지 대상' 등의 표시를 부기하고, 가급적 변호인을 직접 수신처로 하여 의사교환을 진행하는 등 일반 자료와 명확히 구별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압수수색이 실제 진행될 경우 변호인은 현장에서 ACP 보호 대상 자료의 압수에 대해 즉시 이의를 제기하고, 그 내용을 압수목록 및 절차 기록에 명확히 남겨야 합니다. 사후적으로 위법수집증거 배제를 주장하더라도 이미 수사기관이 그 내용을 인지한 상태에서는 방어권 침해를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변호인과의 통화 녹음, 이메일, 메신저 대화 등이 선별 대상에 포함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ACP가 모든 의사소통에 대한 절대적 면책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개정 변호사법 제26조의2 제3항은 일정한 예외 사유를 명시하고 있으며, 특히 변호사가 의뢰인의 범죄나 위법행위에 가담한 경우에는 ACP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ACP는 정당한 법률자문 활동을 보호하는 제도이지, 위법행위의 은폐 수단으로 활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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